처음부터 그의 빛은 온전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힘을 가지게 되어버렸지만, 그 자체가 그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감당치 못한 힘은 육체의 부담을 가져오고, 정신적으로 몰아 그를 고립시킨다. 그 스스로의 몸에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끝없는 어둠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아니, 그는 그것을 빛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어요. 눈앞의 길을 당연한 생각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발에 불똥이 튄 것 같은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발은 멀쩡했어요. 아픔도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었고, 주변은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그가 걷고 있는 곳은 온통 꽃밭이었고, 그 사이 작은 오솔길 위에서 그는 걷고 있었어요. 그러나 잠시 지나간 ...
“으아아악! 늦었잖아! 바보아버지!” 여느 때와 같이 타니가의 아침은 치아키의 외침으로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른 것은 아버지가 새벽같이 나간 덕분에 날아오는 비웃음 소리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씻는 것과 볼일을 동시에 보는, 재빠른 몸놀림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습관적인 행동 덕분에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늦은 것은 늦은 것이었다. ...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려쬔다. 그 빛에 작은 열매들이 옹기종기 빛을 반사시키고 있다. 빛에 따라 매끈한 면면을 드러내 보이는 그 열매를 익숙한 손길이 잡는다. 그것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달큼한 향기가 퍼져나간다. 손을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건만, 금세 한 바구니가 가득 차여 내려간다. 새로운 바구니가 올라오면 그것도 이내 열매로 가득 찬다. 그 열매의 향...
창문을 통과한 빛은 어두운 공간 속에 확실한 길을 내어보인다. 그 빛의 끄트머리에서 손끝이 비추고 있다. 곧고 길게 뻗은 손가락이지만 무거운 마디를 지닌 남자의 손, 그 손가락의 끝에 빛이 낸 길이 닿아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손끝에서부터 빛이 생겨 높게 위치하고 있는 창문 밖의 공간으로 빛을 내뿜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갑게 내려앉은 어두운 공간...
눈이 내리다 녹았다. 그에게서부터 흘러내린 것과 섞여 차갑게 얼어붙은 그 위로 다시 눈이 내렸다. 발목까지 쌓인 눈 위에 하얀 은방울꽃이 있었다. 뭉툭한 손이 그 꽃을 향했다. 눈이 쌓여 보이지 않던 녹색의 잎사귀가 후드득거리면서 드러난다. 그가 그 꽃을 쥐자 은방울꽃에선 소리가 났다. 정말은 소리가 날 리가 없건만, 그 꽃을 손에 쥐자 그의 귓가엔 딸랑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야.] 두통을 일으키는 이명에 유지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뜰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연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큰아버지와 카즈아키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 때처럼 금세 사라진 이명이었지만 유지의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죽으려고 뛰어내렸지만 상처 하나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이 생...
[죽음] 단 두 글자로 이뤄진 단어지만 그 안에 포함된 의미는 크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결말을 가지고 온다. 어둠이 확연하게 가까워진다. 하루 전 나는 내 죽음을 예감했다. 그랬기에 나는 이곳에 있다. 누구라도 바보 같다고 할 테지만, 알고 있었다면 피했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 있다. 시야가 흐려진지는 오래. ...
봄볕이 부드럽게 들어와 청결한 방안을 비춘다. 벽 하나를 넘어서면 그 고요함은 온데간데없이 부산스럽기 그지없지만, 그 술렁거리는 분위기조차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보글거리는 산소방울과 손끝에 매달린 기계중의 끝에 있는 옥시미터, 가슴에 온통 붙어 있는 줄의 끝에 존재하는 심전도 감시기의 소리가 아직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소리를 멈추지 않지만,...
마치 태양에게서 느껴지는 것처럼 멀리서도 느껴지는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별을 끝까지 눈 안에 새기던 공주는 고향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혼절했다. 드넓은 우주를 떠도는 며칠째 공주를 앓게 하는 열은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눈앞의 사실을 받아들이며 도망쳐야 했던 공주는 앓고 있는 내내 그녀는 고향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공주가 죄책감 속에서 불타오른 고향별...
딸칵, 얼음이 녹아 서로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찾기 힘든 곳에 위치한 작은 바, 가장 구석진 곳에서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던 남자가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늦은 밤, 본래도 한산한 곳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밖에 손님이 없다. 음악조차 흐르지 않아 더욱 적막하다. 얼음이 살짝 녹은 진한 호박빛 액체를 한 모금 마시자, 아무런 말없이 바텐더가 그의 술...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아간다. 미련까지 가지고 가버린 리에의 덕분인지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고있다. 얼마 전 내 아들의 이름과 네 이름과 같은 가이라는 청년이 찾아와 네 소식을 전해 주었을때에도 나는 놀랐지만 행복했다. 영혼으로도 우리의 푸른하늘을 지켜낸 네 소식을 들었으니 당연하게도 기쁨과 행복함이 나를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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