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집이었지만, 오늘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오셨습니까? 코우가님.”앞치마를 착용하고 부엌에서 뛰어나온 곤자가 그를 맞이했다. 평소라면 이미 저녁을 만들었을 시간이 지났을 터인데, 아직도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지 앞치마 여기저기엔 밀가루로 보이는 것이 묻어 있었다.“이게 뭐지?”평소의 단촐하고 아늑했...
정신을 차린 눈앞의 풍경은 전혀 변함이 없다. 그것에 쇼타로는 낮게 숨을 몰아쉬면서 버릇처럼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다.깨어난 지 한참이 되도록 그는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침대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시리도록 차갑게 내려앉은 겨울의 공기 속으로 나갈 용기가 없다.살짝 숨을 몰아쉬면 입김이 서리는 날씨다. 그리고 너를 떠나보낸 지 벌...
눈앞의 작은 기계를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는 레오의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고 엘바는 생각했다. 레오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곧 그는 입을 다물었다.자신이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말을 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그가 가진 작은 기계의 화면을 힐끔 내려 보고는 눈을 감았다.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레오는 잘 할 것이다. 자신은 호라의 기척만 신경 쓰면 되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는 다리가 무겁다. 그러나 그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집이 보이자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후덥지근하게 부는 바람이 느껴졌다. 그 바람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는 뒤를 돌아 보았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그의 뒤에선 자신의 ...
자책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자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었다.어째서 경솔하게 그것에 손을 대고 말았는지 자신이 했던 선택을 되돌리고 싶었다.그렇게 스스로를 탓하고 탓해봤지만 눈앞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쉿."작게 나는 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작은 소리에 그 밖에서 마벨러스와 아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박사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삐걱거리는 그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어느 덧 시끌벅적함은 사라지고 별도, 달도 떠있는 공원 안에 오로지 하나의 그네만이 움직이고 있다. 그네에 앉아 떠오른 별을, 떠오른 달을 친구삼아 맥주를 마시던 치아키는 캔을 일그러트렸다. 그리고 그네를 크게 흔들고는 멀리 착지했다. "10점" 멋들어지게 착지한 뒤 자신의 폼에 대해 자화자찬의 점수를 매긴 치아...
몰래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산책을 나섰던 에이지가 방으로 돌아오니 다들 방 여기저기에 술에 취해 쓰러있었다.술은 절대 안된다고 말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결국 술을 마셔버린 뒤 헤헤거리면서 뛰어다니다가 보고 싶었다고 사쿠라누님을 붙잡고 펑펑 울던 나츠키는세기의 대결이라며 아카시와 술대적하던 마스미의 무릎베개를 하고 잠이 들어있었고 마스미 역시 술상에 쓰러지듯...
손에 든 카드를 내려다보면서 지금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눈물을 흘리면 어디선가 데네브가 나타나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안절부절 못할까봐, 꾹 참아냈다.익히 들었던 일이였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 확연하게 자신의 얼굴에 드러나 버렸다.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자신...
싸웠다. 싸움의 원인이었던 커피 잔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유토는 너무 혈기 왕성한 '남자'였고, 아이리는 다른 이들에게 그러듯 다정다감한 누나가 아닌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 다투나 난 뒤 유토는 그곳을 나와버렸다. 오픈시간에 맞춰 밀크디퍼에 들렸던 유토가 그곳을 나간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식식거리면서 유토의 찻잔을 정리하던 아...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코앞에서 흙냄새가 느껴졌다. 시야가 어둡고 어지러운 그에게로 급히 누군가가 달려왔다. "주군.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타케루의 팔이 그에게 잡혔다. "당신의 '괜찮다'는 말은 언제나 신뢰도 제로입니다." 타케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귀에 그것은 천둥보다도 크게 들렸다. ...
치아키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를 쫒아 다니기 며칠 째 그는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도 달랐고 그것이 자못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무라이였던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를 쫒아 다니고 나서부터 본 것이지만 그는 전투에 대한 수련...
-1쿄류쟈가 되고 나서 여러 사정에 의해 검도부에서 탈퇴하고 귀가부가 된 소우지는 하교 중이었다. 운동장은 벌써 여러 서클의 부원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도 역시 모두가 모이는 카페로 가기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소우지의 눈앞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보였다.그녀들에게로 시선이 향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재잘거리면서 하교를 하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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